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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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살짝 조금만” 열심히 보자고 하더니 오늘은 “매우” 열심히 보자고 합니다. 무슨 일이죠?

  과학 철학자 ‘장하석’은 ‘과학, 철학을 만나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물에 비친 건물이 있다고 합시다. 실재론적 과학은 그 건물을 실재라고 하고, 물에 비친 모습은 과학이 표상하는 완벽하지 못한(실재와 비슷하지만 다른) 표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실재론적 과학은 완벽하지 못한 표상을 어떻게 실재와 같이 완벽하게 할 수 있느냐를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이를 거꾸로 봐야 합니다. 복잡하고 간결하지 못한 것이 실재이며 우리가 만든 깨끗하고 단정한 이론이야말로 실재가 아닙니다. 이론은 실재를 완벽하게 구현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실재를 보는 데 도움이 되지요.”

  다 아시겠지만, 이 말은 우리가 다양한 환경에서 생각하며 다양한 타자를 만나 다양한 감정 속에 사는 실재의 삶을 단순하고 완벽한 과학이론처럼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거죠. 아래 그림처럼 보통 사람들은 물에 비친 건물이 진상이라고 이야기하고 물에 비친 흐린 그림자를 허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그림 1), 실재는 그 반대라는 이야기입니다.(그림 2)

01.jpg    02.jpg

      <그림 1 허상>                        <그림 2 실재>

 

  즉 어떤 사람이 추구하거나 찾았다고 주장하는 진실 또는 진상(眞相)은 허상에 가깝다는 이야깁니다. <그림 2>처럼 우리의 삶은 그리 단순명료한 것이 아니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그저 시간의 궤적을 따라 삶을 그려갈 뿐, 끝내 완성할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는 ‘매우’ 열심히 보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살짝’ 열심히 봐야 할 때도 있지만, ‘매우’ 열심히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주엔 나태주 시인의 말씀을 뒤틀었지만 이번주는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오래” 보자고 하고 싶습니다. 그에 더해 “열심히” 까지. 어떤 그림이든 사람의 삶이 그려내는 그림은 마음의 이끌림에 따라 그려지는 것이고, 혜능의 말처럼 그대를 흔드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니 말입니다.

  단, 눈썰미 있는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괄호 안의 “적당히 열심히 보기”라는 부제는 지난주나 이번주나 그대로입니다. 타자와 관계하면서 딱 들어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못하고 어긋나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어떤 삶의 그림을 그리든 조금이나마 덜 어긋나는 삶이 행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타자를 적당히 봐야겠지요.(알아야겠지요. 또는 관계해야겠지요.)

  겨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따듯한 한 주 되시길.

 

* 적당하다 :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다.

** 그림에 실재와 허상을 잘못 적었기는 하지만, 문맥으로 이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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