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방송을 통해 본 심샘

공중부양의 인문학 사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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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서울구경을 갔다가 맛있는 음식을 먹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아들이 생각났지요. 그래서 그 음식을 잔뜩 사서 아들 집에 갔습니다. 

“아들아, 이것 좀 먹어봐. 내가 서울에 가서 먹어보니 너무 맛있더라. 그래서 좀 싸 왔다.”

  엄마가 내놓은 음식을 아들이 봤더니 아들이 평소 먹기 싫어하는 무가 들어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엄마, 난 이거 못 먹겠는데...”

  그러자 엄마는 서운하죠. 서운해서 억지로 한 숟가락 뜨면서 아들 얼굴로 들이밀고, 아들은 ‘뭐, 그렇게 까지...’ 하면서 한 발 물러섭니다.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집 이야기입니다. 제 처와 첫째 아들이 가끔 연출하는 장면이지요.(^^) 처는 아들 생각에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 입맛을 뻔히 알면서도 몸에 좋다거나 자신이 맛있게 먹은 음식은 꼭 한 번 권합니다. 저는 제 처의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상황이 벌어지면 저는 늘 이런 말을 합니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언젠가 소식지에 ‘진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보통 기독교에서는 ‘아낌없이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조건 없이 주는 거죠. 그런데 동양사상에선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고 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에서 아낌없이 주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도 원하지 않으리라 여기는 것’.

  이 두 가지가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히 다릅니다.
  전자 즉, 서양의 사랑 개념인 ‘아낌없이 주는 것’에 상대방 상태에 대한 고려가 조금 부족합니다. 내가 좋다고 상대방이 좋은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강제하는 건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자 즉, 동양의 나눔 또는 사랑의 개념인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베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남이 원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으니까요. 성인은 이유식을 원하지 않겠지만 아기에게 이유식은 생명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타인에게 주지 않는 것도 폭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정말 사랑하려면 이 두 가지의 중간지점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지점은 어떻게 알까요? 글쎄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상대와 상황’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고 조금 더 생각해보면 옅은 길이라도 보이지 않을까요.

  원래 모든 종류의 사랑이 다 그런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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