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3주 소식_어떻게 도와줘야 잘 도와주는 것일까요?(3)

by 영구만세 posted Apr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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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공중부양의 인문학‘(2020.쿠움. 심승현)의 내용 한 부분을 다시 편집한 내용입니다.

  '북한강에서'라는 노래 아세요. 제가 좋아하는 정태춘이란 가수의 노래입니다. 많은 이가 정태춘을 "현실참여의 가수"로만 생각합니다. 정태춘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속에서 늘 노래했으니까요.

  그런데 저에게 정태춘은 음유시인입니다. 가늠할 수 없으면 철학적 깊이, 그것을 풀어내는 아름다운 노랫말 때문입니다. 정태춘의 노래를 듣다 보면 깊게 감동할 때가 많아요.

  '북한강에서'의 노랫말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사람도 늘 같을 수는 없습니다. 타인이 '나'의 일상을 본다면 내 모습은 늘 같아 보일 거예요. 하지만 모두 알고 느끼는 것처럼 '나'의 마음속엔 수많은 '나'가 흐르고 있죠. 마치 소용돌이치는 속을 감추고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죠. '나'만 그럴까요? '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항상성을 유지하며 같은 모습인 듯하지만 각 개체의 내부는 많은 소용돌이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 이외의 사람이나 동물, 식물, 지구 자체도 말이에요. 보이진 않지만, 지구는 끊임없이 지각운동을 하고 있고, 동물과 식물의 자람에는 많은 유기물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건 보이지는 않죠. 하지만, 특별한 변화를 보이지 않던 것이라도 특정한 조건이 되었을 때, 어느 순간에 변하게 됩니다. 바로 보이지 않는 변화가 보이는 변화를 끌어내는 거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변화는 그 속의 많은 것들이 흐르고 흘렀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물속에 또 다른 물줄기가 흘러 마르지 않는 강물로 흐르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들 마음속에 또 다른 마음이 많이 자라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마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나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것. ‘도움’의 본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도움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는 좀 더 깊어서 사람의 마음, 감정 등과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도움을 준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일을 잘하도록 북돋우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을 풍부히 하는 인간의 특성이라는 것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의 일상적인 도움

 

  그러면, 구체적으로 가정에서 어떤 일들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몇 가지를 생각해봤습니다.

  식사하기, 용변 처리, 씻기 등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지속해서 도와주지만, 가정에서도 함께 도와주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른이 보기에 깔끔하지 못해 다시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지도해도 진척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이런 노력을 지속한다면 작은 발걸음 정도라도 더 나아갈 거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집안일을 돕는다고는 하지만, 실은 그것이 돕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손을 두 배나 더 가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런데도 집안일 할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상황(특히 직장을 가진다면 업무 상황에서)에서 지속력과 작업 능력을 향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보기에 눈에 차지 않고 오히려 번잡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집안일 할 기회를 주었으면 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빨래

  • 빨래 구분하기(속옷, 겉옷, 수건 등)  
  • 세탁기에 세탁물 넣기
  • 세탁물 가져오기  
  • 빨래 널기    
  • 빨래 개기 등

청소

  • 옷, 옷걸이에 걸기   
  • 쓰레기, 쓰레기통에 넣기
  • 책 등 물건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   
  • 청소도구 사용하기 등

주방에서

  •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기다리기   
  • 수저 놓기    
  • 음식 나르기
  • 밥 먹고 자신의 수저와 그릇 싱크대에 가져다 놓기
  • 그릇 닦기    
  • 그릇 헹구기    
  • 조리 도구나 재료 심부름하기 등

화장실에서

  • 대변 본 후 스스로 뒤처리하기   
  • 화장실 이용 후 손 씻기
  • 용변 후 물 내리기 등   
  • 세수하기    
  • 머리 감기
  • 수건으로 물기 닦기   
  • 이 닦기에 도전하기  
  • 청소할 곳에 세제 뿌리기
  • 솔로 변기 닦기 
  • 솔로 화장실 바닥 닦기 등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잘 도와줄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도움의 방법엔 ‘전면적 도움’, ‘함께 도움’, 전면적 도움‘ 세 가지가 있으며 이 세 가지 도움을 줄 때, 학생들의 의존성이 강화되지 않도록 경계하자는 이야기를 했고요, 이런 도움을 줄 때 “아이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을 것”,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되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명확히 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바른 칭찬을 할 것” 이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지 않나요? 핵심이 빠졌습니다. 모든 도움은 ‘사랑’의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사랑을 ‘내 곁에 또 다른 나와 그를 위한 빈 곳을 마련해 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타인과 함께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 속의 ‘또 다른 나’도 받아들여야 온전한 균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줄 때, 선입견을 앞세워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마음속에서 내치거나. 특정 행동을 그 아이의 편에서 이해하지 않은 채 그냥 ‘과학적 접근’만 한다면 그 도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아이의 뜻대로 해 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이의 뜻을 다 들어주는 것은 어찌보면 보호자의 편리추구이지 사랑은 아닙니다.

  부모님이 발달장애 아이가 “장애”라는 딱지를 붙이고 종점 없는 노랑버스 안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도와주세요.

 

<에필로그>

  대만에서는 가끔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서 동사자가 속출하는 일이 있습니다. 올 2월에도 그런 일이 있었죠.

'10도면 뭐 그렇게 추운 날씨도 아닌데 죽기까지 해?'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원래 아열대 나라인지라 갑자기 추워지면 평소 추위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기온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A라는 상황에서 B라는 상황으로 진입할 때, (알게 모르게) 준비된 사람들은 잘 견디고 적응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죠. 이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움받을 준비를 도와줄 도움’이 필요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