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주 소식_좋은 선생

by 영구만세 posted Apr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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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초월의 장풍과 권법이 난무하는 무협 만화나 영화, 좋아하세요? 모두는 아니겠지만 많은 남자가 한 번쯤 무협 만화나 영화에 빠져본 적 있을 것 같습니다.

20대 중반 혼인하기 전까지 저는 이재학 만화가의 무협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촉산객이나 검신검귀, 백사풍, 흑사풍 같은 무협 만화를 빌어서 자취방에 쌓아 놓고 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승남의 무협 만화도 재미있었지만, 이재학의 만화를 더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수많은 무협 만화를 보면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협 만화 대부분은 천재적 재능을 모른 채 살던 평범하거나 좋던 시절-악당에 의한 재난(또는 가족의 불행)-시련과 죽음 직전까지의 좌절-좋은 스승(선생)을 만나 단련-악당에게 복수-모두 행복이라는 구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디즈니의 쿵푸팬더도 마찬가지죠. 국숫집 아들 시푸라는 스승을 만나 진정한 용의 전사로 재탄생됩니다.

예전엔 이런 부류의 무협 만화나 영화를 특별한 생각 없이 봤는데, 요즘은 스승(선생)’이라는 존재가 거슬립니다. 무협 만화나 영화처럼 좋은스승을 만나면 누구나 성공적인 변화를 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좋은선생은 어떤 선생일까요?”

 

쿵푸팬더의 '시푸'나 수많은 무협 만화·영화 속 스승들처럼 세상 이치에 통달하고 제자를 고수로 훈련할 수 있는 그런 존재일까요? 제 생각에 실재 세상엔 무협 만화·영화처럼 비법을 전수하여 단숨에 한 인간을 성숙시킬 수 있는 단 한 명의 좋은 선생은 없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한 인간을 성숙시키는 단 한 명의 '좋은 선생'을 콕 집어낼 수는 없지요. '좋은' 선생을 콕 집어낼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낸 환상일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 '좋은 선생'이란 말로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고유명사 김 선생은 그 대상이 내 아이(또는 나)를 더 많이 가르치기 때문에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 대상이 나나 내 아이와 더 많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리가 보통 '좋은 선생'이라고 이야기하는 대상은 실재의 삶 속에서 나를 알아주는 선생(정확히는 나를 알아줄 것이라는 내 환상 속의 선생), 또는 나와 공감하는 선생(정확히는 나를 알아줄 것이라는 내 환상 속의 선생)입니다.

학생은 자신을 자극하는 특정한 선생을 통해 무언가를 결정합니다. 학생을 자극하는 방법과 자극의 종류는 천차만별이고 이를 제공하는 선생은 단수(單數)’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그 결정의 배경엔 수많은 선생이 연결되어 관여하고 있지요. 우리는 그 많은 연결을 보지 못한 채 좋은선생을 찾습니다. 깊이 생각하면 와 연결된 선생치고 좋지 않은 선생은 없습니다.

나무는 다양한 성격의 햇볕, 바람, 비 모두와 연결될 때 건강하게 자랍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사람은 각자 다른 색의 타자(사람 또는 사물 모두 포함)와 많이 연결될수록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많은 이와 연결되어 많은 색의 선생()을 만나 배우며 자란 사람과 초록이나 빨강, 파랑 선생만 만나 배우며 자란 사람은 세상을 보는 폭과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를 성숙하게 하는 진짜 선생은 '김 선생'이라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선생'이라는 보통명사입니다. 그러니 현실 속에서 진짜 좋은 선생은 찾을 수 없지요. 우리가 '나무'라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진짜 그 나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행복한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