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주 소식_가끔 멀리서 보는 것도 좋습니다.

by 영구만세 posted Apr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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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주간 안내문 파일은 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그 주에 부모님들과 소통한 내용만 올릴 예저입니다. 참고해 주세요.

 

  수년 전, 아내와 지리산으로 단풍 구경 갔습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에 아내의 입에서는 ‘예쁘다.’가 연신 흘러나왔습니다. 그때 불현듯 제 입에선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그렇지. 아름답지. 그런데.... 저 단풍나무 가까이 가서 잎을 자세히 봐봐.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을걸? 여기저기 벌레 먹고, 찢어지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서 ‘그’를 보면 겉모습은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자세히 본다고 해서 진정 ’나‘가 아닌 '그'를 완전히 알 수 있을까요? 살면서 겪었던 실제 경험이 그렇던가요? 배우자와 수십 년 살면 배우자를 완벽하게 알게 되던가요? 자식이나 부모님은 어떤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를 자세히 본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나’ 아닌 ‘그’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가 드리운 그림자만 느낄 뿐이죠.

  자세히 보는 것이 그의 모든 것이 아니기에 ‘그’를 너무 자세히 본다는 것이 그리 기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그 대상이 살아있는 ‘그’라면 더욱 그렇죠. 살아있다는 것은 기쁨과 함께 나이듦, 아픔과 온갖 상처를 모두 한꺼번에 품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저는 내가 일상에서 보는 수많은 타자인 ‘그’를 가끔은 멀리서도 보려고도 합니다. 너무 많은 상처는 서로 보거나 보이지 않도록, 그로 인해 서로가 힘들어지지 않도록.

 

  반면, 시인 나태주는 '풀꽃'에서 꽃은 '자세히 봐야 예쁘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 시가 좋습니다.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할 때 강요하고, 혐오하며, 때론 그를 알지 못함으로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위도 '그'를 알지 못한 채 행해진다면 폭력이 됩니다. '자세히 보면 예쁘다.'는 이야기는 '자세히 보면 상대의 좀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죠.

  그런데 '그'를 자세히 본다고 해서 우리는 '그'의 진정한 모습을 완전히 알 수 있을까요? 살면서 겪었던 실제 경험이 그렇던가요? 배우자와 수십 년 살면 배우자를 완벽하게 알게 되던가요? 자식이나 부모님은 어떤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를 자세히 본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는 ‘나’가 아니니까요.

 

  ‘나’를 제외한 우리의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그’. ‘나’와 ‘그’에게는 자세히 보되 매몰되지 않고, 멀리 보되 착각하지 않는 그런 눈이 필요합니다.

  올 한해 우리반 아이들과 가족 모두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